제목 :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본문 : 창세기 21장 9~21절
 말씀 : 길요나 담임목사

 

<본문>  


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11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15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 그 자식을 관목덤불 아래에 두고 
16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17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20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21 그가 바란 광야에 거주할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에서 아내를 얻어 주었더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이름은 몇 글자일까요? 무려 17자입니다. “박 하늘별님구름햇님보다사랑스러우리.” 둘째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아빠가 병원으로 가다가 하늘을 보았습니다. 밤하늘의 별과 하늘이 너무 예뻤습니다. 그래서 ‘우리 딸도 저렇게 됐으면...’ 하는 마음에 이름을 이렇게 지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첫째가 22자였다는 것입니다. “박 하나님의자녀예쁘고진실되고이해심많게자라라.” 하지만 호적에는 앞 글자만 따서 “박하예진이”로 올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둘째가 제일 긴 이름입니다. 두 딸의 이름을 보면 독실한 크리스천 부모님의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이름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사람의 인생과 운명과 복이 이름 안에 담긴다고 생각합니다. 즉, 이름이 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부모가 자녀에게 성경 위인의 이름을 붙여줍니다. 이름처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도 사람에게 복을 주실 때 먼저 이름을 바꿔주십니다. 대표적인 예가 아브라함과 사라입니다. 아브람(높은 아버지)에서 아브라함(많은 무리의 아버지). 또 사래(나의 공주)에서 사라(많은 무리의 어머니)로 이름을 바꿔 주십니다. 열국의 조상이 되는 복을 주셨습니다. 이 아브라함과 사라의 아들에게는 이삭(웃음)이라는 이름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불가능한 때에 약속의 아들 이삭을 낳은 아브라함과 사라는 웃고 기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그 이름이 불려지지 않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창 21:9). 성경이 이스마엘이라고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식 없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내가 너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겠다”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여종인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불신앙과 불순종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저 “하갈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반면 사라의 아들은 “이삭”이라고 함으로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평생동안 작든지 크든지 어떠한 업적과 성취를 이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계획 또 신앙의 원리에 입각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무의미하다고 하십니다.
남들부터는 “성공했다” 인정받고, 박수받습니다. 그러나 내면은 텅 비어 있습니다. 허무하고 참다운 만족을 누리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나를 위해 계획하신 인생의 길과 다른 방향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그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부와 명예와 쾌락을 쌓아 놓아도 만족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명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에 큰 갈등이 생깁니다. 여종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립니다. “놀리다”는 히브리어 원어로 “비웃다, 멸시하다, 핍박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들 이스마엘에게도 몰래 애정을 쏟았을 것입니다. 사라에게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시간이 그대로 흘렀다면 모든 재산도 이스마엘이 상속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라에게서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이스마엘은 천덕꾸러기 인생이 되었는데, 아버지 사랑과 상속이 이삭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스마엘에게 이삭은 너무나 얄미운 존재입니다. 몰래 이삭을 쥐어 박습니다. 이삭이 울자 놀립니다. “너, 이름이 ‘웃음’인데 왜 울어, 이 바보야” 아마도 이런식이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어느 날, 이 모습을 사라가 보았습니다. 그래서 분노한 사라가 아브라함을 근심하게 합니다.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창 21:10~11)
이삭은 하나님이 언약으로 주신 축복의 아들 즉, 웃음과 기쁨의 아들입니다. 이삭을 통해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가 되는 축복을 누릴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방법으로 낳은 이스마엘은 그런 이삭이 온전히 웃음과 기쁨의 아들이 되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또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에게 “매우 근심”을 주는 인물이 됩니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에 순종한 삶의 결과는 ‘이삭’입니다. 처음에는 힘들어도 후에는 웃음과 기쁨이 찾아옵니다. 반면에 불순종과 하나님 뜻을 떠난 삶의 결과는 ‘이스마엘’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릴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축복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걸 막습니다. 처음에는 좋아 보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나중에는 “매우 근심”하는 일들이 생겨 인생을 짓누릅니다.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한다”고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에겐 그래도 아들이기에 매우 근심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창 21:12).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던 불순종의 요소들을 버려야 합니다. 이스마엘 때문에 이삭이 진정한 웃음과 기쁨의 이삭이 될 수 없듯이 그걸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축복이 온전히 성취될 수 없습니다. 결국 ‘소탐대실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해 위로와 위안의 약속을 주십니다.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창 21:13). 이스마엘을 걱정하지 말고 뒷일은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용기를 얻은 아브라함은 순종합니다. 다음날 일찍이 하갈과 그 아들을 집에서 내보냅니다. 하나님은 정말 약속을 지키십니다. 광야에서 죽을 지경이 된 그들을 지켜 주시고 이스마엘이 장성하여 아라비아 민족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순종을 위해 얻는 손해나 어려움을 반드시 채워 주시고 책임져주시는 신실한 하나님이십니다. 두렵고 근심되어도 불순종의 부분을 내 인생에서 떠나 보내야 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처럼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풍성한 역사를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